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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渤海를 꿈꾸며... 1998-2009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만난 것은 1990년 백두산을 찾으면서 시작된 조선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부터였다. 백두산을 오가면서 만난 서고성터에서부터 돈화의 오동성터, 훈춘의 팔련성, 발해진의 상경성 등은 발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환인과 집안을 다니면서 오녀산성과 국내성, 광개토 대왕의 비석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틈틈이 이러한 유물들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1999년에는 지인을 통해 정효공주 묘의 벽화사진을 구하기도 하였다.

2001년 지금은 고인이 된 대구과학대학의 오한택 교수가 공동 작업을 요청해 왔다. 오한택 교수는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스로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99년 연구 년으로 연길에 있는 나를 찾아와 탈북자와 조선족 마을 을 취재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공동으로 작업을하여 2000년 봄 MBC에 방영을 통하여 두각을 나타내었고 대구과학대학의 방송연예과 교수로 스카웃 된 제자였다. 내용은 발해사를 전공한 경성대학교 한규철 교수는 이론적인 부분을 맡아 중요한 작업 장소를 선정하고 나는 사진, 오한택 교수는 영상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의기투합했고 촬영에 들어갔다. 처음 작업의 시작은 조공도 코스, 심양에서 손진기선생을 만나 그가 가지고 있는 발해사의 관점을 들었다. 속지주의屬地主義를 택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하다. 우리는 환인의 오녀산성을 거쳐 집안의 국내성터까지는 고구려에 대한 답사였지만 집안에서부터 백산, 임강, 장백현까지는 압록강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압록강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백현에서는 영광탑이 백두산 천지를 바라보며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것은 천손사상天孫思想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이도백하에서는 보마산성 터에서는 붉은색과 검은 색의 사기그릇을 발견하면서 고구려와 발해시기를 모두 겪은 흔적을 발견하였으며, 동창에서는 발해시기 돌무덤 떼를 찾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한교수의 고증을 거치면서 찾을 수가 있었고 평소의 지론인 “아는 것 만 볼 수 있고, 보이는 것만 촬영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돈화에서 오동성, 발해진의 상경성, 우창의 오공교를 거처 동녕의 단결촌에서는 옥수수 밭에 있는 옛 우물터를 발견하였다. 아마도 청나라의 봉금령으로 오랜 기간 방치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길에서 방학봉교수를 만났다. 방교수는 문화혁명시기 어려운 과정에서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발해에 관련된 많은 참고 문헌을 접할 수 있었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오늘날 발해사에 대한 연구의 기초를 쌓았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러시아의 끄리스키노 유적을 답사하려고 하였지만 본인은 학교의 일정상, 방 교수는 중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서, 한교수와 오교수 들이서 다녀왔다.

한교수와 나는 여행기간 같은 방을 썼다. 그래서 많은 이여기를 나누었다. 공통적으로 인식한 것은 발해의 유적이 있는 곳에는 조선족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발해의 특산물인 “노주의 벼”의 현장인 노주가 지금의 화룡시 서성인 중경 현덕부였다는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발해가 멸망한지 천년이 지난 후 조선인들이 이주한 지역 역시 벼농사를 짓기 쉬운 습지대였으며 밭농사를 짓는 한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버려진 땅이었던 것이다.

-강위원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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