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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pace-WEENARI, dalsung-nongong, daegu, Korea

중국의 저력 1990-1997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13억의 인구에 56개의 민족이 살고 있는 거대한 나라 중국, 나는 그 중국을 여러 번 여행하면서 차츰 사진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중국의 방문한 1990년도에는 그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에 끌려 신이라도 들린 듯 셔터를 눌렀고 미흡함을 느끼면서도『천의 얼굴 만의 마음』이라는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전시를 가졌다. 그때에 매료된 민족의 靈山 "백두산"에 매달려 오늘까지 아홉 번의 촬영여행을 통해 두 권의 작품집을 펴내었고 경향각지에서 전시를 가지기도 하였다. 백두산을 오가면서 만났던 동포들과 한족漢族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삶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이 얼핏 우리의 옛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궁금증을 역사책을 통해 달래보았다. 그 속에서 중국과 우리민족은 싸우면서 협력하고 동화同化되는 수천 년의 세월을 같이 보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것은 민족적인 개념을 떠나 한 문화권의 변천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이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중국인들, 그들은 순박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그 기운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새벽의 공원이다. 그 곳에서 그 들은 태극권이라고 부르는 기공체조를 하거나 창唱을 부르고 새의 노래 소리를 즐기며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연을 날리거나 검술을 연마하였다. 어떤 쪽에서는 병든 남편이나 아내의 산책을 도와주고 있었고 그리고 사교춤을 추는 등 도시 전체가 공원으로 몰려 나와 아침을 여는 듯 했다. 특히 일요일에는 전통 복장을 갖추어 민속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새벽 시장의 모습이다. 새벽시장은 인접한 시골에서 올라온 농사꾼이나 상인들이 발을 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장터를 가득 메운다. 그들의 복장, 표정, 상거래의 모습에서 활기와 더불어 소박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중국의 상혼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을 지나 아침에 접어들면 거대한 자전거의 물결과 마주치게 된다. 자전거는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 교통수단이다. 가정마다 1대 이상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낮의 공원도 인파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 소일消日 거리를 찾는 노인들이지만 일거리가 없는 젊은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띄어 경쟁체제로 전환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아 명예퇴직 제도로 고개 숙인 현재의 우리사회를 보는 듯, 찹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다수의 노인들은 평생을 열심히 일한 후 정년이 된 후 여생餘生을 이렇게 공원에서 화투나 마작, 장기, 바둑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우리 내 공원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상당수의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볼 수가 있었다. 남녀평등의 제도가 정착되고 사회가 모든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시장경제로 전환되면서 능력에 따른 고용제도가 시행되면서 연금제도나 교육문제, 의료보험문제 등등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어 시대의 물결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퇴근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의 골목길湖洞은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갖가지 정겨운 장면이 펼처지는 무대가 된다.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노인, 그 옆에서 놀이를 하는 어린이, 더위를 피해 집 앞 골목길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가족들, 아버지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어린이, 명상에 잠긴 노인 등등 영화에서도 볼 수가 없는 진솔한 삶의 모습이 연출된다. 밤이 되면 곳곳에서 야시장이 펼쳐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과 데이트에 열중하는 연인들, 친구를 만나 양고기 안주로 술을 마시며 토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어울린 소규모 개인 식당과 상점들이 뒤섞여 불야성을 이룬다.

중국의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은 어떠한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한 사람의 급료로서는 안정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이 없고 맛 벌이 부부가 아닌 가정에서는 퇴근 후에 인력거를 몰거나 길거리 상점에서 아르바이트성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처음 중국을 여행한 1990년에는 어지간한 규모의 식당이나 상점 등은 대부분 국영이었으며 식사시간이 지나면 문을 eke는 곳도 많아서 그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고초를 격기도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개인이 직영하는 곳들이 많이 생겨나서 나름대로 경쟁체제로 돌입하였고 저마다의 특색을 가진 선전문구나 영업형태를 보면서 묘한 감정에 빠져들 때가 많았다. 또 여러 곳에서 점을 치거나 절을 찾아 기도를 하는 것을 볼 때 나약한 인간이 믿을 곳을 찾아 의지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내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주로 찾는 곳은 서민들이 모여 살고 있거나 모여서 활동하는 곳이다. 가는 지방마다 나는 아침의 공원과 시장, 그리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분위기가 있는 골목을 만나면 메모를 해 놓았다가 한가한 낮 시간이나 퇴근 시간대에 맞추어 그 곳을 다시 찾는다. 그러한 곳에서는 인간의 삶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나의 삶은 바람직한 것인가 ? 하는 화두話頭를 던져 보기도 한다.

중국속의 우리역사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 백제의 후손들, 그리고 장보고와 함께한 선조들의 후예後裔들은 모두 다 한족漢族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에게 동화되어 이제는 흔적도 없어 졌지만 사진을 통해서 본 그들의 모습에서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엉뚱한 망상은 아닌지? 아니면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옛 모습 들을 찾아보고 싶은 사진가로서의 욕심 때문일까? 아무튼 이제 우리는 그 깊이와 속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라 중국과 함께 21세기의 동반자가 되어 같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중국의 촬영에 끈질기게 집착하는것은 알랙스 해일리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탐구하고 추적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것은 신채호의『朝鮮上古史』나 재야학자들의 우리민족의 뿌리 찾기 등과 같이 머나먼 옛날에 역사의 뒤안길에서 묻히고 가려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역사의 단편들을 찾기 위함이다. 중국을 선택한 사진가로서 나의 작업은 중국과 우리는 수천 년의 세월동안 국경을 마주하고 싸우다가도 협력도 하면서 서로가 많은 것들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고 수많은 선조들이 그들 속에 녹아들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예전에 우리들이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생각했든 여유롭고 소박하며 진솔했든 인간적인 면모面貌들이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기록하는 것이다.

- 강위원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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