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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pace-WEENARI, dalsung-nongong, daegu, Korea

가파도 1981

1982년 평소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던 분들과 함께 릴레이 개인전을 기획하면서 내가 설정한 테마는 “해변海邊”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바닷가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조명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간 즐겨 다니던 바닷가에서 촬영한 원고들을 점검해보니 무엇인가가 빠져있었다. 그것은 동해안과 남해안, 서해안 등은 부분적으로나마 포함되었지만 섬에 대한 사진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러한 와중에 우연히 본 신문에서 가파도와 마라도의 기사를 보고 그중 한곳을 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라도는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는 커지만 1주일에 선편이 한편뿐이었다. 대구에서 부산, 그리고 제주시와 모슬포를 거치는 과정을 생각하니 만약 풍랑이라도 있으면 20일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마라도는 일정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도는 모슬포와 마라도 사이에 있었고, 모슬포에서 하루 한편의 배가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의 수도 많고 역사적인 배경도 흥미로워 쉽게 가파도를 선택하였다.

가파도加波島는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고 해서 개도蓋島, 개파도蓋波島, 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 더위섬, 더푸섬 등으로도 불린다.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에 떨어진 섬으로서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의 중간에 위치하며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 우도牛島 다음으로 큰 섬이며 면적은 875㎡, 해안선 길이가 4.2㎞이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m,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적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25℃, 겨울철은 5.2℃이며 평균 강우량은 1,983㎜이다. 논은 없고 밭이 67.4ha, 임야가 153.5ha로서 겨울철에는 보리를 재배하고 여름에는 고구마 등을 재배하지만 농업은 부업이고 주업은 어업이다. 주요 어획물은 소라·전복·해조류·해삼·성게 등인데 근해에는 자리돔 어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 섬은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곳이었으나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8년(1842년) 제주목사 이원조가 흑우黑牛의 약탈을 막기 위해 개간開墾을 허용하면서부터이다. 영조 27년(1751년) 국영목장인 별둔장別屯場이 설치되어 흑우를 방목하였으며 고종 2년(1865년)에는 대정지역이 흉년이 들자 가파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한 가파도 해역은 예로부터 거센 기류와 조류가 부딪쳐 나가는 수역으로 이곳을 지나는 외항선들의 표류와 파선이 잦았던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1653년 가파도에 표류했으리라 짐작되는 하멜이『하멜표류기』를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서양에 소개된 계기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은 상동과 하동 등 2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등학교가 있다.

1981년 8월 여름방학을 맞아 가파도로 향했다. 혼자서 단출하게 떠나는 촬영여행에서 챙겨야할 것들은 많았다. 륙색과 카메라 가방을 울러 매고 제주행 밤배를 탔다. 선상에서 파도소리와 별빛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모슬포에 이동하였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가파도로 향하는 자그마한 배에 몸을 실었다. 1시간 정도 걸렸을까? 눈앞에 돌담이 있는 집들과 고깃배가 여러 척 정박해있는 조그마한 포구에 도착했다. 포구의 첫인상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동네 아이들은 방파제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낚시를 즐기고 있었으며 승객들 중에서 관광객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한 20분정도 지났을까? 100호가 채 안되어 보이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의 이장댁에 가서 민박집을 소개받고 마을의 정황을 들었다. 그리고 해녀들이 작업하는 배의 승선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고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아침부터 맑은 날씨다. 오늘은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묘지와 비석, 초가지붕에 돌담이 둘러져있는 전통 가옥이 흔하다. 간간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보인다. 아들이 중학교로 진학을 해서 학교가 있는 서귀포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밭에는 수박과 참외, 고구마가 어우러져 있었으며 옥수수와 호박넝쿨이 싱그럽다. 논은 보이지 않는다. 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바다로 나간 해녀들이 파도에 몸을 싣고 물질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모든 것이 생소하다. 종일토록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구경을 겸하여 섬에 대한 정보를 익혔다. 저녁을 먹고 섬에서 유일한 가게에서 빵과 콜라 우유 등 내일 배에서 먹을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이른 아침 도선장이 있는 방파제로 향했다. 수많은 해녀들이 장비를 둘러메고 방파제로 모였다. 그들은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물질을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이 승선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촬영한 후 세 번째 배에 올랐다. 약 30분 정도가 지나자 하나 둘씩 물옷을 갈아입고 채비를 차리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바다 속의 해산물들을 채집했다. 젊은 해녀는 자기 머리만한 전복을 꺼내어 보여주며 장난스럽게 자랑하는 천진한 모습도 보인다. 거리가 멀어서 촬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동지나해를 4박5일, 5박 6일씩 배를 타면서도 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해녀들이 타는 배를 타고 두 시간이 넘으니 멀미가 나고 구토를 할 것 같다. 배는 고프지만 빵과 콜라, 우유는 쳐다보기도 싫다. 가만히 바닥에 누워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구토가 사라졌다. 옆에 있던 해녀가 조심스럽게 참외 한 개를 건넸다. 참외를 한입 베어 물고 씹어 삼키고 나니 멀미가 사라지고 힘이 쏟는 것 같다. 주위를 살펴보니 모든 해녀들이 참외를 먹고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해녀가 자그마한 전복 두 개를 잘라준다. 처음 보는 낫선 사람에게 참 으로 인심이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6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해녀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배가 포구에 닿고 해녀들은 채집한 전복과 소라 해삼 등을 분류하고 몸을 씻으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또 하루해가 저물었다.

이렇게 짧은 나의 가파도 촬영여행을 끝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속적으로 그들을 작업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먼 거리에 따른 시간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면이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제주도를 들려서 해녀들을 살펴보면 젊은 여자들이 없다. 최근 해녀들을 집중적으로 작업한 제자들의 사진에도 젊은 해녀는 사라졌다. 힘든 일과 문화적인 소외, 자녀교육 문제로 섬을 떠나고 바다를 멀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만 지나면 해녀들의 모습은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가파도는 1993년 763명에서 1994년에는 583명, 2009년에는 300여명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도서島嶼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9년을 ‘가파도 방문의 해’로 정했다. 그래서 2009년 3월 28일과 29일에는 제1회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가파도에서도 정보화시대에 발맞추려는 주민들에 염원을 담아 개발을 하지 않아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용한 섬이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한 해산물이 넘쳐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홈페이지도 개설하고 관광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강위원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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