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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구고진 2008

적구고진碛口古镇qì kǒu gǔ zhèn은 산서성山西省shān xī shěng 여양산呂梁山lǚ liáng shān중 황하상류에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풍부한 지하자원과 더불어 명․청시기의 건축물 들이 산재한 오래된 마을로서 황하적구고진이라고도 부른다. 이번에 소개하고자하는 이가산촌李家山村lǐ jiā shān cūn과 서만촌西湾村xī wān cūn은 적구를 중심으로 이웃하고 있으며 독특한 건축양상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지금의 행적구역으로 가장 가까운 큰 도시는 태원시太原市tài yuán shì가 있으며 남쪽은 유림맹문진柳林孟门镇liǔ lín mèng mén zhèn, 동쪽은 임가평진林家坪镇lín jiā píng zhèn, 북쪽은 총라욕진丛罗峪镇cóng luó yù zhèn과 붙어 있고 서쪽은 섬서성陝西省shǎn xī shěng의 오보현吳堡縣wú bǎo xiàn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가산촌은 적구진에서 3km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서 흙 요동이라고 불리는 땅굴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가산촌은 이가산李家山lǐ jiā shān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후에는 산동과 하남에서 사람들이 건너와서 정착하였으며 지금은 장씨, 하씨, 이씨, 제씨 등의 집성촌이다. 청나라 건륭41년3월에 기재된 이씨세계도 李氏世系图lǐ 에는 이씨의 시조는 산서성 평양 곡옥현 호적으로, 서남향 중사점西南乡中史店xī nán xiāng zhōng shǐ diàn 사람이며 1522-1566년에 이가산이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기재되어있다. 곡옥현지에는 처음 12가호에 남자 19명, 여자 10명, 어린이 2명이 살았다고 한다. 1980년대에 행정촌이 되었고 2000년 인구조사에는 45가호, 153명인구가 살고 있었다.

이가산의 가옥들은 40도의 경사가 있는 수백m의 산언덕에 굴을 파고 돌을 갈아서 만든 벽돌과 나무와 돌을 재료로 하여 살림집을 건설한 것인데 이씨들이 번창하면서 이등상과 이덕봉이라는 두 부호가 서로 경쟁하듯이 집을 지으면서 형성되었다. 어떤 집은 산을 옮기다시피 무려 9채의 집이 층층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며, 각각의 집들이 중복되는 디자인이 없이 서로 다른 품격을 가지도록 정밀하게 설계하고 정교하게 건설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벽과 지붕을 땅굴을 파서 건설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이가산촌에는 크고 작은 살림집이 100여 채가 그 원형이 보존된 채 남아있으며 220여 가호 760여명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리고 문화제급의 호화로운 청나라시기의 건축군이 8종 이상 남아있다.

서만촌은 황하고진黃河古镇huáng hé gǔ zhèn 적구에서 1km 떨어진 곳에 독특한 건축구조를 가지고 있다. 서완촌의 창시인은 진사범이라는 사람이며 명나라말기에 적구로 이사를 왔고 배로 물건을 운반하는 공인으로 일어서서 여러 가지 상업을 통해 부를 형성하면서 마을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300년의 역사를 거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다. 마을은 3만㎡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으며 앞에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2003년 중국역사문화명촌으로 선정되었으며 진 씨들의 집성촌이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북경에서 사진전문 상업 화랑을 경영하면서 소수민족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고 있는 강학송康學松Kāng xué sōng과 함께 감숙성甘肅省gān sù shěng 랑목사郞木寺láng mù sì의 쇄불절晒佛節shài fó jié 촬영을 다녀오면서 귀로에 들리게 된 것이다. 감숙성에서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섬서성을 거쳐 도착한 이가산는 한밤중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유가산 중턱, 아무도 없는 빈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카메라가방을 울러 메고 민박집을 찾아 산길을 올라갈 때만 하여도 곧바로 북경으로 가자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서 마을의 정경을 보는 순간 어제의 고생은 봄눈 녹듯이 사라졌고, 아이젠을 차고 산등성을 행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이가산촌의 정경은 장관 바로 그 자체였다. 처음 부산항에 배를 정박한 외국인들이 산동네의 불빛을 보고 고층 빌딩으로 착각했던 것과 같이 이가산 전체가 고층 빌딩인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마을을 둘러보니 하나하나의 독립된 건축물들이 층을 이루듯 건축되어 있었고 내부는 토굴을 파고 건축을 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와 자연친화적인 과학적 배려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튿날은 적구의 대표적인 고가옥인 적구객잔에서 체류했다. 토굴을 파고 만들어진 반월형의 침실, 돌과 벽돌로 만들어진 복도, 황하의 도선장이 내려다보이는 살평상 등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인근의 서만촌은 산을 두르고 강을 바라보며 건설한 살림집들이 이가산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3일간의 체류기간은 이곳을 둘러보고 사진을 촬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마도 가까운 지역이거나 국내였다면 몇 년을 두고 계절을 달리하면서 다양하게 촬영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는 고가옥이 있다는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중국의 고건축들이 어떤지 한번 들려나 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20년에 걸쳐 여러 차례 중국의 촬영여행을 다녔고, 800년의 고도인 북경에서 여러 차례 청나라시기의 살림집이 밀집해있는 호동胡桐hú tóng을 촬영하면서 어느 정도 중국의 고 가옥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가산과 서만촌의 명․청시대의 살림집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고건축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도심의 살림집과는 전혀 다른 자연 속에서 그곳의 지리적 풍토적 여건을 고려하여 건설한 중국인들의 살림집의 한 단면을 보면서 자연과 동화되어가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현재의 중국의 고진의 전통적인 모습은 중국의 땅 넓이만큼, 다양한 민족의 수만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러한 민간인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문화적 유적들이 전통적인 삶의 모습까지 간직하면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문화와 더불어 아시아 문명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길이남기를 기원해 본다.

-강위원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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