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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세시풍속

중국의 조선족 마을은 대부분 조선반도의 각 지역에서 집단으로 이주해서 형성된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같은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비슷한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문화적 특성은 축제나 세시풍습 등에서 많이 표출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착하면서 인근에 살고 있는 타민족의 문화와 섞이게 되었고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사라지게 되었고 동시에 조선팔도의 복합적인 문화적요소와 더불어 인근에 살고 있는 한족이나 여타 소수민족의 관습 등이 혼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족의 전통마을인 향촌에서는 가끔 이번 명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회의를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회의는 대개 지부서기의 집에서 이루어지는데 지부서기와 촌장, 노인회회장, 서기, 부녀주임 등을 포함하여 마을의 노인들이 동석한다.

명절은 크게 전통적인 명절과 조선족의 경축일,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축제, 서양에서 들어온 명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인 명절은 원단이라고 부르는 신정과 춘절로 알려진 구정, 대보름, 단오, 추석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절은 한족들도 대부분 같이 보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민속적인 행사와 절차만이 다를 뿐이다.

연말이 되면 도시에서는 며칠 전부터 상설무대를 갖추어 놓고 공연을 한다. 물론 공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연예인이 아닌 경우가 많고 마을 단위로 조직된 단체나 학생들의 공연이 주를 이룬다. 공연의 내용은 한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의 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민족에 관계없이 공통적인 점은 연말에서부터 대보름까지 밤과 낯의 구별도 없이 수시로 들리는 폭죽소리와 함께 상가나 식당 등에서는 전통적인 중국의 홍등을 단다. 원단이나 춘절에는 이주민 1세대가 살고 있는 일부의 집안에서는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례도 지내를 않고 세배를 다니는 것도 보기가 어렵다.

조선족들이 주로 살고 있는 중국의 동북삼성은 그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강한 추위를 동반한 겨울이 매우 길고 겨울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연말에서 부터 신정연휴, 춘절, 대보름, 심지어는 3월8일 부녀절까지 축제의 열기에 휩싸인다. 그리고 대부분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에 민속경연대회를 벌리는데 춘절에서 대보름까지는 민족이나 마을단위로 출연준비로 분주하다. 예전에는 대보름을 세기위해 소나 돼지를 잡고 오곡밥을 지으며 농악무를 추며 지신을 밟고 떡을 쳐서 마을잔치를 하고 저녁 무렵에는 폭죽을 터트리며 달집을 태우고 풍년을 기원하였지만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난 지금은 그러한 풍습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식과 추석은 다 같이 산소에서 성묘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 차이가 있다면 청명과 한식에는 산소에 다녀가 가토를 하고 제사를 지내며 또 납골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추석에는 산소에 다녀가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낸다. 또 납골당에 가서 제를 지내기도 하며 납골당에 있는 유골을 이장하여 묘지를 만들 수도 있고, 이미 조성된 묘지에 상석을 하거나 묘비를 세울 수도 있다. 중양절에는 성묘를 가도 되고 안가도 되지만 묘지를 수리하거나 만들 수도 있고 비석을 세울 수도 있다.

음력 5월 5일의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라 하여 예전부터 민속적인 명절로 알려졌다.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창포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꼽는다. 그리고 널을 뛰고 그네를 타며 하루를 즐겼고 남자들은 격구, 석전, 씨름을 하고 장기를 놀았다. 후에 조선족 집단거주지역에서는 해마다 단오에는 민족의 전통적인 운동회를 개최하면서 어린이들에게는 새 옷을 해 입히고, 쑥떡과 찰떡, 수수떡을 해먹었는데 지금은 한족들이 단오날에 먹는 “쭝즈”를 먹으며 쑥을 묶어 출입문 옆에세워 놓는다. 그리고 그해에 쓸 쑥을 뜯어말리는 가장 좋은 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화혁명의 여파로 단오 역시 침체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70년대 말 개혁개방이 되고 난 후부터 단오의 부활이 시작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사무위원회, 문화청과 문화국, 군중예술관과 문화관 등의 주체로 조선족단오절축제는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조선족명절축제로서 민족문화의 고양, 민족단결과 애국주의의 강화 등으로 지방경제와 사회건설을 추진하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한족이 절대다수를 포함하지만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사회로서 소수민족의 자치가 허용되고 있다. 한 많은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도 그들 나름대로 환희에 넘치는 날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날을 경축일로 만들어 조선족 최대의 명절로 승화시켰다. 그 중 하나는 마을의 생일이다. 조선족의 전통적인 마을은 대부분 집단이주로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마을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해 왔다. 그래서 상당부분 마을은 그들이 이주해온 날을 기념하여 마을의 생일로 삼고 있으며 그날에는 타지로 나간 사람들까지 마을로 돌아와서 함께 생일잔치를 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노인절이다. 일제가 항복하고 해방이 되자 압박과 착취에서 고통 받든 조선족들은 공산당으로부터 토지를 분배받으면서부터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나름대로의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민족문화는 상당부분 침체되었다. 문혁이 끝나고 조선족의 전통적인 미덕인 경노사상을 심화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제가 항복한 날을 택하여 노인절로 승화시켰다.

노인절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는 처음으로 용정에 새벽농민대학을 설립한 김시룡 등의 제의로 연길현과 연변주정부의 비준을 거쳐 1982년 8월 15일, 연길현 동성용향정부에서는 동성용중학교 마당에서 수천 명의 농민들이 참가하여 동성용향 노인협회를 설립하고 동성용향 노인절을 선언하였다. 이어 60세가 넘은 100명의노인들에게 회갑상을 차려드리면서 천여명이 참여한 단체무용을 공연하는 등 민속체육운동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소식이 퍼지자 전국각지에서 다투어 노인절을 설립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전연변조선족자치주와 동북삼성의 조선족 집단주거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지금은 조선족 최대의 민속명절로 부상하게 되었다.

축제는 시대적 요구와 변화에 따라서 규모와 방식, 개최장소 등이 다채롭게 변화하였지만 8월 15일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조선족의 축제는 모두가 노인절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즉 민속제나 운동회, 문화관광축제 등으로 이름은 바뀌었으나 조선족의 비물질 문화예술(한국의 무형문화제)이 바탕인 것은 변함이 없으며 한국과의 교류는 물론 국제적인 문화예술축제를 지향하며 발전하고 있다.

기타 명절로는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탄생을 기념하는 9. 3절, 국제 여성의 날에서 유래한 3.8 부녀절, 국제 노동절을 기념하는 5. 1절과 5월 4일의 청년절, 우리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아동절인 6. 1절, 스승의 날인 9월 10일의 교사절, 중국의 최대명절인 10월 1일의 국경절, 발렌타인데이인 2월 14일의 정인절情人節, 12월 25일의 성탄절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3월 8일 부녀절은 가사일과 육아, 그리고 농사일까지 골몰하는 여인들에게 휴식과 오락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한해의 삶을 준비하는 의미가 있다. 이 기간 동안 주부들은 첫 째 부엌에서 해방이 된다. 대부분 도시에서는 외식을 하기 때문에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고, 농촌마을 등에서는 대부분 일주일 동안 치러 질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고 그 동안 가정의 일은 전적으로 남자들이 책임을 진다.

청년절과 노동절은 항상 연결되어있다. 주 5일제 근무가 시행되고 있는 중국에서 축제일 전 후의 토·일요일을 합치면 9일간의 연휴가 된다. 넓은 대륙에서 철도를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중국에서 이 9일간의 연휴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6월 1일은 아동절이다. 아동절이면 새 옷으로 단장한 어린이들이 참가한 사생대회, 무용 콩쿠르, 글짓기 대회, 운동회, 소풍 등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공원이나 유원지에는 아이를 대동한 가족 놀음이 수도 없고 어린이를 겨냥한 놀이터에는 장사진이 펼쳐지고 있으며, 식당 등은 아예 발 디딜 틈도 없다. 중국에서 한족과 달리 조선족은 2명의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법적인 보장에도 불구하고 학비 등을 이유로 대부분 한 자녀만을 출산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부모들이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와 놀아줄 수 있는 공식적인 이 날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 축제가 된다.

신 중국이 탄생한 1949년 10월 1일을 기념한 국경절은 중국 최대의 명절인과 동시에 조선족들에게도 가장 큰 명절에 속한다. 그것은 국경절이 단순한 명절이기보다는 봉건체제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듯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국경절은 5년 단위로 큰 행사를 치루는데 5주년, 15주년 등 끝자리가 5인 경우에는 비교적 규모를 축소하고 뒷자리가 0이 되는 10주년, 20주년 등의 행사는 성대하게 개최한다.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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