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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협회

중국의 조선족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동북삼성의 집단거주지역에는 도시나 농촌의 구분이 없이 어디에서나 노인협회가 있다. 한족이 주류를 이루며 56개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중국에서도 조선족 노인협회가 가장 모범적이라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다.

노인협회의 역사는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조선족진 서안촌노인협회에서 광복 후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그 간의 정황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는데 그중 일부를 살펴보자. 신안진은 김좌진 장군의 활동무대였던 산시와 이웃하고 있으며 해방 전부터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지역이다.

“광복 직후 중국 공산당은 노인회를 인정하였고 서안촌정부에서는 해방이 되든 1945년부터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의 장례식과 추도식을 촌정부와 노인회가 공동으로 마련하였다. 당지부와 촌 정부는 해마다 원단, 춘절, 3.8 부녀절, 노인협회 성립 9.1절 등등의 명절에 위문품을 가지고 노인들을 위로하고 축하하였으며 민족적인 특징과 전통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혼례나 상례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공산당과 촌정부의 협조로 토지개혁, 토비숙청, 해방전쟁 등 시대적인 과제는 동북조선인민보를 중심으로 정부에서 하달된 지시사항을 전달하면서 노인들의 인식을 제고시켜 적극적으로 정부시책에 호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래서 합자작화 시기인 1950년 1월 10일에 명칭이 노인독보조, 1980년대에 들어서서 노인협회로 개편되었고 조직 활동과 학습내용도 시대의 조류에 맞게 제도화하였다.”

“회원의 자격은 60세 이상이며, 입회와 탈퇴가 자유롭다. 그러나 규율을 위반하거나, 범법행위자, 연장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자 등은 강제 퇴출을 시킬 수 있으며 불량한 행위나 불효자 등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는 자들을 비판하고 교양교육을 실시하였다.”

위의 기록으로 미루어 오래된 마을에는 일제시대부터 노인회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본 연구자가 방문하고 조사한 대부분의 조선족 집거지역의 노인협회는 그 활동과 조직이 비슷하며 위의 내용과 유사한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노인협회는 구성원들은 역량과 현역 시절의 업무에 따라서 다양한 단체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수한 노인협회 회원인 농민들은 민속놀이 등을 통하여 민족의 전통문화를 남기면서 마을의 시니어 역할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도시지역에서 학교나 정부의 요직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들은 직공활동실이나 경제문화교류협회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경우는 다르지만 하얼빈과 같은 대도시에는 퇴직교수 모임인 교수친목회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능력에 따라서 지역사회가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맡아서 처리한다. 예를 들면 연수현 조선족 100년사, 청원현 조선족지, 등은 그 지역의 조선족 경제문화교류협회가 집필과 자료의 수집을 맡았으며, 밀산시 100년사는 밀산시 직공활동실에서 퇴역한 교육계나 관계의 인사들이 집필을 하였다. 특히 요녕성의 신빈현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신빈현 현위서기로 퇴임한 최선주회장이 10여 년 동안 협회를 이끌면서 독립군 남만주사령부가 있던 화흥중학교 옛터인 신빈현 왕청문 조선족학교학교에 양세봉장군의 흉상을 건립하는 등 조선족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들은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왔으며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국가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것은 권력에 아부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형태가 아니라, 천입遷入 민족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배타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특히 서안촌노인협의 기록에서 신문을 읽어주는 독보활동은 말과 글을 제대로 모르는 주민들에게 신문이나, 방송 등의 기사나 정부의 시책을 전달해 줌으로서 한어를 몰라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중국의 공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담겨있다. 그리고 경노사상 등 미풍양속에 대한 지도는 다민족사회에서 조선족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교양과 생활 습관을 교육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감과 보수성을 고수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류사회와 큰 마찰이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이주한 노인들이 생존하고 있는 마을에서는 부모들로부터 한국적인 습관을 익히며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적 정체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들이 조선족의 정체성에 집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에 기인하지만 조선족사회가 한반도에서 이주한 후 오랜 기간 동안 농경문화 속에서 집단거주를 한 것과, 유교적 교육을 근간으로 하는 인본주의가 바탕이 된 것이다. 최근 조선족 사회 역시 이촌향도의 현상으로 농경사회가 무너지고 있으나, 그들이 이주해간 도시지역에서 새로운 집거지역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민족적인 정체성의 지속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또 그러한 지역일수록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많고 민족의식은 점점 더 옅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활동영역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야할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사회의 올바른 인식과 지원이 필요하다.

EBS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 강위원과 함께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겨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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